컴패스는 레니게이드가 독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프 브랜드의 엔트리 모델이었다. 12년 만에 2세대로 탈바꿈하며 막내 티를 벗은 새 컴패스는 2018년 7월에 우리나라 땅을 처음 밟았다. 이전 세대 페이스리프트 이후 모델이 그랬듯, 컴패스는 브랜드 최상위 모델인 그랜드 체로키의 이미지를 빌어 도시적 승용차 분위기의 소형 SUV를 지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금 팔리고 있는 지프 라인업에서 가장 정돈되고 균형 잡힌 모습이기는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익숙한 지프 특유의 디자인 요소들 때문에 새 차라는 느낌이나 컴패스만의 개성이라 할 부분들이 그리 돋보이지 않는다.
뼈대로 보면, 새 컴패스는 아랫급인 레니게이드의 확장판, 윗급인 체로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크기 면에서는 이전 세대와 길이와 높이는 비슷하고 너비가 크게 넓어졌다. 그럼에도 요즘 유행하는 소형 SUV 기준으로 조금 큰 정도일 뿐, 1세대 모델 데뷔 때 경쟁하던 다른 모델들은 이미 한 차급 위로 분류될 만큼 덩치가 커졌다. 그래서 크기와 값, 브랜드 이미지를 모두 고려하면 국내 시장에서는 직접적 경쟁상대로 꼽을 차가 마땅치 않다. 이런 배경은 컴패스의 강점이 될 수도,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소비자들의 선택에 어느 쪽 특성이 더 크게 작용할지는 차를 좀 더 꼼꼼히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실내는 교과서적 장비 배치 및 구성을 바탕으로 약간 투박한 질감의 내장재와 가죽이 부드러운 곡면과 곡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지프 답게 각종 버튼과 다이얼은 크고 굵게 정리되어 있어 조작하기 쉽다. 여러 지프 모델에 두루 쓰이는 3 스포크 가죽 스티어링 휠은 림이 굵은 편이어서 잡는 느낌이 좋고, 조절장치 조작성도 좋은 편이다. 계기판 역시 두 개의 원형 아날로그 계기 사이에 다기능 LCD 디스플레이를 배치한 전형적 구성이다.
다만 센터 페시아의 장비들은 기능에 비해 조절장치들이 차지하는 면적이 커서, 넓은 공간이 조금은 낭비되고 있는 느낌도 든다. 셀렉터레인 다이얼과 모드 표시등은 놓여 있는 위치가 낮은 만큼 알아보고 조작하기 쉽게 비스듬히 눕혀 놓았지만, 그 덕분에 기어 레버 앞쪽에는 스마트키를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 크기인 작은 수납공간 밖에 없다. 특히 스마트폰을 놓을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은 것이 흠이다.
애플 카플레이,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 연동 기능이 내장된 유커넥트 터치스크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한글 표시를 지원 하고, 기본 화면에 표시되는 앱을 맞춤 설정할 수 있는 등 비교적 편리하게 구성해 놓았다. 그러나 한글 글꼴은 물론이고 전반적 UI 디자인은 평면적이고 투박하다. 카플레이 연결 때 종종 오류가 생기는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다. 알파인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은 외부 소음이 비교적 잘 차단되어 생기 있는 소리를 낸다.
지상고나 좌석 높이는 일반적인 체형의 어른이 차에 오르내리기에 딱 좋은 정도다. 앞좌석은 크기가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탄력 있는 가죽과 푹신한 쿠션이 어우러져 앉기에는 편안하다. 동반석까지 전동조절 기능이 있고 조절 부위도 운전석과 같은 것은 장점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단단한 편인 헤드레스트가 조금 아쉬울 뿐이다. 좌우 좌석 사이 간격이 조금 좁은 편이지만, 전반적 앞좌석 공간은 동급 차들과 큰 차이는 없다. 컵 홀더 크기는 무난하지만, 좌석 사이에 있는 콘솔 박스는 안쪽에 튀어나온 부분 때문에 무척 작다.
뒷좌석은 가장자리를 부풀린 앞좌석에 비하면 굴곡이 거의 없는 편이고, 쿠션도 좀 더 단단하다. 앞좌석 아래로 발을 놓을 공간이 넉넉하고, 무릎 공간도 차 크기에 비하면 충분하다. 너비도 두 명이 나란히 앉기에는 답답하지 않지만, 가운데에는 뒤쪽으로 튀어나온 센터 콘솔이 거슬리는 것은 물론 앉는 부분 자체도 좁아 어린이가 앉더라도 몸집이 크다면 불편할 듯하다. 뒷좌석용 컵홀더는 등받이의 접이식 팔걸이를 펼쳐야 쓸 수 있지만, 도어 포켓으로 대신할 수 있다. 뒷좌석용 공기 배출구와 230V 인버터, USB 전원 포트 등 쓰임새 좋은 편의장비들은 좋게 평가할 만하다.
트렁크 해치는 전동 개폐나 핸즈프리 개방 기능 없는 평범한 방식이다. 턱은 아주 높지도 아주 낮지도 않은 정도고, 바닥판을 올려놓거나 내려놓음으로써 공간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전체적인 공간은 차 크기에 비하면 넉넉한 편이고, 바닥판을 올린 뒤 6:4 비율로 나뉘어 있는 뒷좌석 등받이를 앞으로 접으면 트렁크 턱에서 앞좌석 뒤까지 바닥이 길게 이어진다.
엔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프를 비롯한 크라이슬러 계열 FCA 그룹 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2.4L 타이거샤크 가솔린이다. 175마력의 출력과 23.4kg・m의 토크는 자연흡기 엔진으로써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만, 터보 엔진이 흔한 요즘은 딱히 뛰어나다고 하기 어려운 수준의 성능이다. 그나마 소음이나 진동이 적은 편이고, 엔진 자체의 특성은 나쁘지 않다.
다른 모델들을 통해 먼저 소개되었던 9단 자동변속기는 비교적 숙성이 잘 된 편이어서, 부드럽게 달릴 때에는 무난하고 편안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고속도로 주행 속도 영역에 접어들어도 좀처럼 8단이나 9단으로 넘어가지 않는 특성은 여전하다. 가속할 때 변속 시기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지만, 비교적 부드러운 변속감 덕분에 거친 느낌이 심하지는 않다.
스티어링 휠에 변속 패들이 달려 있지는 않지만, 기어 레버로 수동처럼 변속하며 엔진 힘을 잘 살리면 스포티하지는 않아도 가속력이 크게 아쉽지 않을 만큼 제법 잘 달린다. 트렁크에 캠핑장비를 싣고 4인 가족이 탄 채 국도를 달리면서도 그리 답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AWD 시스템도 예상보다 빠르고 자연스럽게 동력 배분을 조율해, 코너링 때나 가속 때 안정감을 높인다.
스티어링 감각은 부드럽고 움직임이 일관되지만,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양보다 차체가 머리를 돌리는 정도가 작아서 주차할 때처럼 느린 속도에서는 손을 바쁘게 놀려야 한다. 주행 중에는 초기 반응이 무뚝뚝하고 노면을 읽기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편평비가 높은(60 시리즈) 타이어가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영향이 크다.
승차감과 차의 움직임은 절묘하다. 위아래 움직임이 작지 않은데도 통통 튀기거나 출렁이지 않아서 전반적 느낌은 차분하다. 코너에서도 차체가 옆으로 어느 정도 기울기는 하지만, 서스펜션과 타이어, 네바퀴굴림 장치가 서로의 역할을 잘 나누어 맡으며 안정된 상태를 잘 찾아 나간다. 포장도로에서의 승차감이나 움직임에서 특별히 뛰어난 점을 찾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비포장도로에 들어서면 작은 차체와 탄력 있는 서스펜션 때문에 차체가 이리저리 씰룩거리기는 하지만, 셀렉터레인의 도움을 받으면 접지력만큼은 확실하게 보장된다. 셀렉터레인 선택식 지형 대응 주행안정 시스템은 이 정도 크기, 이 정도 값인 차에서 접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실제 활용 여부를 떠나, 이런 장치는 차의 활용 범위를 넓히는 데 도움을 준다.
컴패스 라인업에서 상위 모델에 속하는 리미티드 트림인 만큼, 적용된 안전 및 운전보조 기능은 컴패스 트림 가운데에서는 가장 많다. 그러나 대부분 차가 직접 주행에 개입하지 않고 경고하는 것이다. 크루즈 컨트롤은 차간거리 조절 기능이 없고, 차로 이탈 방지 역시 경고 기능만 있다. 후방 교행 경고 기능 정도가 동급 차에서 흔치 않은 장비로 꼽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 현지에서의 차급이나 값을 생각하면 수긍할 만하지만, 요즘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선택할 수도 없다.
2세대 컴패스가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미디어 시승행사에서 한 시간 남짓 몰아보고 난 뒤에는 그리 좋은 인상을 얻지 못했다. 첫 만남에서 마음을 확 사로잡을 강렬한 매력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좀 더 오랜 시간 경험해 보니, 허술한 구석은 있지만 마음 편히 쓰고 다루기 좋은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최신 기술이 돋보이지도 않고, 꾸밈새가 세련되지도 않지만 몰고 쓰기가 쉽고 편한 차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FCA 계열 브랜드 차들의 고질적 전기/전자장치 신뢰성이나 애프터서비스 관련 문제만 아니라면, 정을 붙이기에 나쁘지는 않은 차다.
다만, 컴패스를 선뜻 고르거나 추천하기 망설여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값이다. 10월 들어 FCA 코리아는 ‘블랙 프라이데이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 사실상 재고정리라 할 수 있는 이 행사에서 2019년형 컴패스 2.4 리미티드의 값은 원래 값의 1/4 가까운 1,050만 원이 내려가 4,340만 원이던 차에 3,290만 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었다. 차 자체의 매력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원래 매겨진 값보다는 내린 값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이 정도 큰 폭은 아니었지만 이미 딜러 차원에서 상당한 금액을 할인해 팔았던 차들의 잔존가치가 안습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제원
지프 컴패스 2.4 리미티드 4×4
길이x너비x높이 4440x1820x1650mm 휠베이스 2636mm 엔진 직렬 4기통 2.4리터 가솔린 최고출력 175마력/6400rpm 최대토크 23.4kgm/3900rpm 변속기 자동 9단 공차중량 1640kg 최고속도 -(미발표) 0-시속 100km 가속 -(미발표) 복합연비 9.3km/리터 CO2배출량 184g/km 에너지소비효율 5등급 기본값/시승차 3,990만 원/4,340만 원
--- 자동차 글쟁이 류청희가 풀어내는 다양한 자동차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시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아 모하비 더 마스터 3.0 디젤 마스터즈 5인승 (0) | 2020.05.26 |
---|---|
현대 아반떼 (CN7) 5분 타본 썰 (0) | 2020.05.01 |
제네시스 G80 가솔린 3.5 터보 4WD (0) | 2020.04.08 |
쌍용 코란도 1.5 터보 가솔린 C7 2WD (0) | 2019.10.10 |
[링크] 2020 레인지로버 이보크 D180 퍼스트 에디션 (0) | 2019.08.05 |
댓글